볕은 뜨거웠고 완연한 여름이었다.
방학이지만 여전히 연습을 하러 낮엔 학교에 가고 일주일 중 며칠은 쉬고 며칠은 워터파크로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를 나가는 생활을 하고 있다. 호타루마츠리 전만 해도 그런 일상적인 일과가 당연했지만, 호타루 마츠리 이후에는 새로운 하나가 변했다.
바로, 응…. 여자친구가 생기게 된 것이었다. 이렇게 갑자기? 정말로? 렌은 이렇게 얼떨떨하게 진행된 모든 것에 조금 어색함을 느꼈다. 뭔가 그 날 이후로 세계가 360도 회전한 것 같았다. 그러니까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지만 제자리가 아닌 것 같은 그런 낯선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달라진 것은 없지만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코로리와 연락하는 빈도가 늘었다는 것이었다. 이전에도 종종 연락을 했었지만 그렇게 많이 연락할 수 없었다면, 이제는 아무런 이유 없이 연락하며 안부를 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연인 관계인 것이다. 부끄럽지만….
그래서 렌은 현재 무엇을 하고 있느냐, 하면 지금 골목길에 숨어 있었다. 깔끔한 흰 반팔 셔츠를 입고 새까만 면바지를 입었다. 여름이라서 덥지만 렌은 반바지는 운동하거나 일할 때 빼고는 잘 입지 않는 편이었다. 그리고 손에는 방금 꽃집에 들려 사온 꽃다발 하나가 들려 있다.
렌은 첩보 작전을 방불케하는 긴장감으로 골목길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지나가는 사람 없이 한적하다. 한적할 시간을 골라 왔으니 당연하다. 그리고 코로리가 일하고 있는 책방 쪽으로 걸음을 조심히 옮긴다. 책방의 틈을 통해 코로리가 있는지 다른 손님이 있는지 확인한다. 다행히 책방에는 코로리만 자리를 지키고 있는 듯 했다. 이미 연락해서 확인한 사항이었으나 그 사이에 혹시 다른 이가 있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렌은 이제 숨을 고르고—벌써부터 심장이 두근거리고 목덜미가 빨갰다— 꽃다발을 등 뒤로 숨긴 채 책방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코로리가 자신을 발견하고 인사를 하면 쑥쓰럽게 웃을 것이었다. 그리곤 코로리 앞에 다가가 서서.
“고백, 다시 하러 왔어요. 그 때 너무 성급하고 바보같이 굴었던 것 같아서.”
사실 코로리를 밀어내고 끊어내려고 했던 것 아니었는가. 제가 좋아한다고 하면 코로리도 더이상 제게 잘해주지 않고 거리를 두겠거니 생각해서. 아무리 생각해도 코로리는 저를 좋아한다기보다는 친구라서 잘해주는 거겠거니 생각했어서. 그래서 상처주고, 아프게 하고. 조금 후회했다.
렌은 꽃다발을 쥐지 않은 손으로 뒷목을 쓸다가 이내 말을 다시 잇는다. 긴장한 탓인지 손에 힘이 들어가 등 뒤에 숨긴 꽃다발이 바스락거린다.
“사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계속 코로리 씨가 생각났었어요. 흰 것만 보이면 자꾸 코로리 씨가 생각나고. 그 땐 몰랐었는데 생각해보면 그 때부터 반했을지도 모르겠고….”
렌은 이내 바지에 손을 한 번 문지른 뒤 등 뒤로 숨겨두었던 꽃다발을 코로리에게 건넨다. 노란 해바라기 꽃다발이었다. 여름하고 잘 어울리는.